UPDATED. 2024-04-27 17:23 (토)
[사라지는 자연부락] '학' 날아가고 '밭' 파헤쳐진...포항 학전리
상태바
[사라지는 자연부락] '학' 날아가고 '밭' 파헤쳐진...포항 학전리
  • 이정형
  • 승인 2024.03.08 1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학-당수마을-중간마을-칠전.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학전리를 구성하는 마을 이름이다.

북구 흥해읍과 신광면에 걸쳐 있는 도음산 남쪽 능선을 따라 생긴 자연부락들이다.

송림이 울창하여 많은 학이 날아와 살았다고 한다. 13세기경 김수택이란 사람이 송학이라는 지명을 지었다고도.

송학에서 1km쯤 남쪽으로 내려오면 언덕 위에 당수마을이 있다. 마을 앞 큰 소나무 당산목(당수나무)이 지명의 배경이 된다. 

당수마을 남동쪽 언덕 아래는 약 100여 년 전만 해도 못이었다. 홍수로 제방이 터져 못이 없어진 후, 그 자리에 한 두 집 들어서기 시작했다. 송학과 칠전의 사이라 중간마을이라 명했다.

학전리에서 가장 큰 마을은 칠전. 옛날 일대에는 자생하는 옻나무가 많았고 마치 밭에 씨를 뿌려 가꾼 듯이 무성해 칠전이라 했다.

고름새기, 밋골, 뽈은뎅이, 울골, 작은 울골, 큰 울골, 텃골의 일곱 골짜기에 밭을 개간해 칠전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골짜기에는 김해 김씨 문중이 세운 돌비정(乭裨亭)과 군수이공선정비(郡守李公善政碑)가 있다. 과거 김씨와 이씨들이 많이 살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배경이다.

송학리, 칠전리, 당수마을, 중간마을은 흥해군 남면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학전리로 합병되어 영일군 달전면에 이속되었고, 1957년 달전면이 폐지되면서 연일면에 편입됐다.

칠전에서 내려오면 자명초등학교(2007년 폐교)를 만난다. 학전리 옆 달전리를 포함해 자명리, 유강리 아이들까지 아우르던 학교였다. 졸업하면 포항 시내 중학교로 입학하는 게 일반적인 사회 진출로였고. 

1973년 5월 16일 '자명열차사고'가  발생했다. 오전 7시 15분쯤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유강철도건널목에서 동대구행 비둘기호 열차와 충돌해 85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형 사고였다. 

창문을 깨고 뛰어 내리다 산산이 부서진 학생도 있었다. "팔은 여기 있고, 다리는 어딨노. 저기도 우리 XX네."

곳곳에 흩어진 아들의 살점을 치맛자락에 주워 담던 아낙네는 30년을 더 살다가 뒷산에 묻혔다. 아들을 보낸 곳에서 십 리 거리다.

"포항 시내 전 중·고등학교의 휴교와 온 국민의 애도 속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께서도 몸소 입원한 부상자들을 찾아 병문안 하셨다.

40여년 세월이 흘러 그때 우리들이 부모 나이가 된 지금, 채 피지도 못하고 꺾이어 천개의 바람이 된 죽마고우들의 원혼을 달래며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아픔 없는 하늘에서 편히 계시라고"

2015년 자명초등학교 총동창회가 추모비에 쓴 글이다. 당시 자명열차사고라는 기사가 난 것은 버스 앞에 붙은  행선지명이 자명이라서일 것 같다.

지난달 포항시는 학전리 산 123-1 번지 일원에 골프장을 조성하기 위한 도시관리계획안을 발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